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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life in the states/단상

#2. 결혼을 한다는 것. 자녀의 결혼을 앞둔 부모의 마음 그리고 부부

 

쓰고 싶었던 주제였지만 차분히 앉아서 쓸 여유가 없어 못쓰고 있다가 새벽에 4시 조금 넘어 눈이 떠져서 뒤척이다 노트북을 펼쳤다. 지금 시각은 6시 7분.. 이미 새벽은 아니고 아침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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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친구의 추천으로 미국 리얼리티쇼 <Love is Blind>를 봤다.

제목처럼 사랑하면 눈이 멀 수 있는지에 대한 연애 실험이자 커플 매칭 프로그램이다. 처음에는 상대방의 정보를 알지 못한 채 각자 방송국에서 설치한 Pod 안에 들어가서 얼굴도 보지 못한 채 목소리로만 상대방을 알아간다. 여러 번 파트너를 바꿔 가며 대화를 하다 보면 대화가 특별히 잘 통하는 사람이 생기고 더 깊은 대화를 통해 이 사람이 내 사람인지 알아본 다음, 프러포즈를 하고 승낙을 해야만 서로 만날 수 있다. 약혼이 성사된 커플들은 바로 칸쿤으로 신혼여행을 가게 되고 (정확한 기간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아 확인해봐야 하고 수정하겠지만.. 아마도) 40일 내에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반전은 결혼 서약을 할 때 거절을 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점. 일반적인 결혼식에서는 드레스까지 차려 입고 가족들을 초청한 상태에서, 더군다나 입장할 때부터 대답을 하기 직전까지 미소를 띠고 있다가 No.라고 대답할 가능성은 아주 적지만, 이 프로그램의 특성상, 그리고 제작진들이 거절을 하더라도 거절의 뉘앙스를 절대 풍기지 말라고 요청을 했던 건지는 몰라도 약혼한 여섯 커플 중 결혼식을 무사히 치르는 커플의 비율은 생각보다 낮았다. 리얼리티 쇼에 출연한 출연 당사자, 출연자들 가족이 상대방에게 속은 것은 물론이고 시청자들도 모두 속았으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헤어지는 것이 가장 아쉬웠던 커플도 있지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따로 언급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2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몇 번이나 코 끝이 찡하고 훌쩍였던 포인트는 각 출연자 부모님들의 "다르지만 같은 모습"이었다.

 

프로그램의 배경이 미국이다 보니 물론 다양한 인종이 있었고 인종에 따라 부모님들의 말투도, 모습도 달랐으며 부모님께 상대방을 소개할 때의 태도도 모두 달랐다.

흑인 여성 출연자의 아버지는 미국 사회에서 흑인들의 목소리를 특별히 강하게 내시던 분이었고 미국에서의 흑인 사회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커서 당연히 흑인 남성을 만나 온전한 흑인 가정을 꾸리기 원했다. 그래서 백인 남성을 소개할 때 기본적으로 호전적인 태도와 약간의 거부감이 깔려 있었으나 그분은 완전히 딸 바보여서 딸이 사랑하는 남자를 결국 받아들이게 되고 딸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면 정말 그 남자를 죽이러 갈 것 같은(ㅎㅎ) 기세를 풍기던 아버지... 또 다른 (내 기준) 모델 같은 예쁜 외모의 한 백인 여성 출연자는 가난하게 자란 것 같았다. 상대방 남성 출연자 조차도 자신의 약혼자가 그런 곳에서 자랐을지 몰랐다고 할 만큼 그다지 좋지 않은 동네 환경에서 딸을 키웠지만 자신의 딸은 착하고 다정하다며 그런 딸과 어떤 부분에서 결혼을 결심 했는지 경계하다가도 감격에 겨워 눈물을 터트리는 어머니.

당신의 자식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것은 정말 하나 같이 같았다. 

예상치 못하게 상대가 거절하자 당황한 신부는 울며 식장을 뛰쳐나가고 높은 하이힐을 신고 같이 좇아 나가 딸을 붙잡고 네가 먼저 거절하지 그랬냐며 함께 우는 어머니. 정말 사랑한다고 했던 약혼자에게 결혼 서약이 순간에 거절을 당하고 상심한 아들을 위로하며 "my baby.." 흐느끼는 어머니. 소중한 나의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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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한다는 것은,

이제는 한 가정을 책임 질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해진 성인 남녀가 부모의 날개 아래를 벗어나, 이 온실 같은 가정을 떠나 새로운 가정을 꾸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님의 눈에는 우리는 언제나 부모님께서 우리를 처음 만나셨을 때의 모습과 같이 아직 "아기"와 같은 존재인가 보다. 특별히 결혼을 하는 그 순간에는 이제 자식을 부모님의 품에서 떠나보내셔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라 유달리 눈빛이 슬퍼 보이시는 것 같다. (SJ언니 결혼 예배 때, 아버님께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시고 흐느끼는 순간을 보고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다 못해 콧물까지 흐를 뻔했던 에피소드도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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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결혼식과 지금까지도 마음에 걸리는 한 가지

내 결혼 예배 전부터도 그렇게 식전 영상을 보며 엄마의 코가 빨개지고 커다래져서(ㅋㅋ) 우시는 훌쩍이는 얼굴이 상상되어 그렇게 울었는데, 결혼 예배 당일에는 울컥하는 순간이 있기는커녕 싱글벙글 웃으며 잘 마쳤다. 신부 부모님께 인사하는 순간에도 다행히 엄마가 눈물을 잘 참아 줘서 나는 계속 웃을 수 있었다. (친구들이 결혼식 처음 하는 것 맞냐고..체질이라고.ㅋㅋ) 

미국 리얼리티쇼 <Love is Blind>에서 아들의 결혼식을 앞두고 복합적인 마음으로 눈물 흘리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우리 아빠가 떠올랐다. 결혼식장 문이 열리기 전 했던 말은, "아빠, 너무 빨리 걸으면 안 돼요?" 이제까지 잘 키워주셔서 고맙다는, 아빠는 정말 좋은 아빠였다는  따듯한 인사말을 하지는 못할 망정. 끝까지 다그치고 있다. 식장 입장 영상을 보니 아빠도 aisle을 걸으면서 대외용 미소 지으면서 방긋방긋 웃고 계신다. (알고 보니 역시나 그 아빠의 그 딸이었다.)

결혼식 날부터 지금까지도 마음에 걸리는 한 가지는 아빠와 aisle을 쭉 걸어가서 나를 오빠에게 넘겨 줄 때, 아빠가 손을 놓아야 하는 지점에서 안 놓으시길래 나는 혹시나 결혼식에서 실수가 발생할까 봐 얼른 손을 뺀 것. 그렇게 내 손을 빼앗기듯 넘겨주시고 아빠 자리로 돌아가실 때 기분이 안 좋으시지는 않았을까 걱정스럽다. 이제라도 여쭤보고 죄송하다고 꼭 말씀드려야겠다. 내가 오랫동안 마음에 걸리던 것을 나중에 죄송하다고 이야기하면 늘 언제나처럼 기억도 못하실지 모르겠지만. 

 


부모의 마음

몇 달 전, 열매(조카 1호)의 어린이집에서 학예회 같은 것을 해서 언니 집에 놀러 간 김에 같이 어린이집에 구경을 갔다. 나는 언니보다 앞에 앉아 있어서 언니의 얼굴을 보지를 못하다가 열매 사진을 한참 찍다 웃겨서 언니에게 공감을 얻으려고 쳐다보니 언니가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벌써 4세가 되어서 학예회도 하고. 너무 감격스러워서 운다고 했다. 그 당시 나는 조금 황당하고 우습기까지 했는데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나도 눈물이 날 것 같은 건 뭐지?

부모의 마음은 이런 것인가보다. 조카만 봐도 마음이 아리게 예뻐서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열매가 3년 뒤 초등학교를 입학하게 되면 입학식에서 언니는 또 열매의 예쁜 뒷모습을 보며 얼마나 울지 벌써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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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라는 것

최근 정말 빠져들어서 재미있게 본 드라마, <부부의 세계>를 보면서 참 부부라는 것이 별 것 인 것 같으면서도 별 것 아닌 관계. 0촌이다 보니 1촌인 부모-자식 간의 관계보다 가까우면서도 언제든지 남이 될 수 있는 관계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마지막 회에서의 김희애의 대사도 정말 많이 와 닿았다. 아무래도 드라마 대사라 써놓으면 약간 오글거리기는 하지만 부부의 세계 스토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 갈 대사.

"내 심장을 난도질 했던 가해자. 내가 죽여버린 나의 적. 치열하게 증오했고 처절하게 사랑했던 당신. 적이자 전우였고 동지이자 원수였던 내 남자, 남편."

"삶의 대부분을 나눠가진 부부 사이에 한 사람을 도려내는 일이란 내 한 몸을 내줘야 한다는 것. 그 고통은 서로에게 고스란히 이어진다는 것. 부부간의 일이란 결국 일방적인 가해자도 완전무결한 피해자도 성립할 수 없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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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결혼 생활과 나의 다짐

결혼을 하는 것과 결혼을 앞둔 부모의 마음과 부부까지. 너무 많은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나는 대로 쓰다 보니 정말 두서가 없는 글이 되었다! 그리고 스스로도 믿기지 않지만 장장 이 글을 쓰는데 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침대에서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고 지금 남편은 옆에서 아직 쿨쿨 자고 있는데 괴롭혀서 깨울 생각에 약간 신난다. (어제저녁에 먹은 숯불갈비 때문에 남편이 뒤척이면 훈제 냄새가 난다. ㅋㅋ 훈제된 통구이 아론이.. ㅋㅋㅋㅋ) 

항상 다정하고 따듯한 남편 때문에 남편이 곤히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항상 그렇게 사랑스럽고 고맙고 미안하다. 우리가 결혼 한지 벌써 햇수로 3년 차, 1년 하고도 8개월이 지났다. 결혼 2-3년 만에 이혼하는 사람들을 보면 아직도 너무나 신혼인데 어떻게 그렇게 싸우고 이혼까지 할 생각을 할까 싶다..
아직 부족한 것도 분명히 있지만 행복한 결혼 생활을 선물해준 남편에게 너무 감사하다. 오늘은 조금 더 다정한 아내가 되어야겠다.

 

 



끝.

(아빠와 식장 들어갈 때와 결혼식날 부모님의 투샷을 이 글에 올리고 싶었는데 여기에 없다. 외장하드를 뒤져서 나중에 첨부 해야겠다.)